이 글은 외국인이 한국어를 사용하며 친구, 연인, 동료와 맺은 관계 속에서 언어적 성장과 감정 교류를 어떻게 경험했는지를 담고 있다.실수에서 비롯된 웃음, 갈등 속에서의 표현법 학습, 직장에서의 언어 격식 등 실제 생활 속 생생한 한국어 체험이 핵심이다.
1. 친구와 함께한 한국어
제가 처음 한국어로 친구를 사귀었던 건 어학당이 아닌, 카페에서 우연히 만난 또래 대학생이었습니다. 당시 제 한국어 실력은 초급 중반 수준이었고, 문법은 어설펐지만 대화의 의지가 강했죠. “발음이 귀엽다”라는 말로 시작된 대화가 이후 주말마다 만나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이 친구와는 주로 카카오톡으로 대화했는데, 매번 문장을 보낼 때마다 사전을 찾아가며 쓰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오늘 날씨가 차갑다”는 말을 쓰고 싶어 “날씨가 맛있어요”라고 보냈더니, 친구가 크게 웃으며 ‘차갑다’와 ‘맛있다’의 차이를 설명해 줬습니다. 부끄럽기도 했지만, 그 이후로 오히려 더 편하게 틀릴 수 있게 되었고, 친구도 자연스럽게 저의 선생님이 되어주었습니다. 우리는 매주 만나면서 서로의 언어를 가르쳐주기로 했습니다. 그는 영어를 배우고 싶었고, 저는 한국어가 필요했기 때문이죠. 공평하게 30분씩 언어를 바꾸는 언어 교환 방식도 시도했지만, 결국은 대부분 한국어로 대화하게 되었습니다.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한국에서는 한국어가 더 편했고, 그 안에서 나도 점점 ‘말하는 사람’이 되어갔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친구와의 대화는 형식이 없어서 좋았습니다. 뉴스나 시험처럼 정답이 있는 문장이 아니라, 감정이 담긴 말들이었기 때문에 더 기억에 남았고, 표현도 자연스럽게 익혀졌습니다. “진짜?”, “대박”, “헐” 같은 말들을 친구에게 배운 후, 교실에서는 배울 수 없었던 ‘살아 있는 한국어’가 제 입에 붙기 시작했습니다. 틀려도 웃을 수 있었던 그 관계 덕분에 저는 한국어에 대한 두려움을 버릴 수 있었고, 말할수록 더 가까워질 수 있다는 걸 배웠습니다.
2. 연인과 함께한 한국어
한국인 연인을 사귀게 되면서 제 한국어 실력은 또 다른 차원으로 변화했습니다. 그전까지는 일상 대화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감정 표현, 갈등 조율, 일상의 디테일까지 한국어로 풀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보고 싶어”, “좋아해” 같은 표현들이 전부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의 감정 상태를 말로 설명해야 할 일이 많아졌습니다. 기쁘거나 슬플 때, 오해했을 때, 혹은 사소한 일로 다퉜을 때—모든 감정은 한국어로 말해야만 풀 수 있었습니다. 특히 싸움을 했을 때는 단어 선택 하나가 큰 오해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어 “됐어”라는 표현을 제가 단순히 ‘그만하자’는 의미로 썼는데, 연인은 그걸 ‘화를 낸다’고 받아들여 갈등이 커졌던 적이 있죠. 그 사건을 계기로 감정 표현을 더 조심하게 되었고, 같은 말도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진다는 걸 배웠습니다. 연인과의 대화는 문법적으로 완벽하지 않아도, 진심이 전달되면 이해받을 수 있다는 신뢰를 만들어줬습니다. 때론 말보다 표정이나 톤이 더 중요하다는 것도 알게 됐고, 내가 생각하는 언어보다 상대가 받아들이는 언어가 중요하다는 점에서 ‘소통’의 진짜 의미를 배웠습니다. 또한, 연인의 가족과 식사를 하게 되면서 경어와 반말, 높임말 사용의 중요성을 더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평소에는 친구처럼 말해도 되지만, 어르신들 앞에서는 단어 하나에도 신경을 써야 했습니다. 이 경험은 TOPIK 시험보다 더 긴장됐지만, 그만큼 저의 한국어 실력을 한 단계 끌어올려주는 계기가 되었죠. 결국 연애를 통해 저는 한국어를 ‘감정의 언어’로 배웠고, 사랑도 다툼도 배움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걸 몸소 체험했습니다.
3. 동료와 함께한 한국어
대학생 시절 인턴십을 하면서 처음으로 한국인 동료들과 함께 일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느꼈던 건, 친구나 연인과는 전혀 다른 언어의 ‘격식’이 필요하다는 점이었습니다. 처음 며칠은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정도로 소통했지만, 점차 이메일 작성, 보고서 전달, 회의 참여 등 실제 업무에 필요한 언어들이 등장하자 긴장감이 커졌습니다. “검토 부탁드립니다”, “수정 후 공유드리겠습니다” 같은 표현은 교재에서는 배운 적이 없었고, 주변 동료들의 이메일을 모방하면서 서서히 익혀갔습니다. 가장 힘들었던 건, 한국어의 ‘존중 문화’였습니다. 직급에 따라 말투가 달라져야 하고, 회의 중 발언도 조심스러워야 했습니다. 특히 “네, 맞습니다”와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같은 표현은 내용보다 말투의 온도가 중요하다는 걸 배웠죠. 처음엔 단순한 ‘동의/비동의’로 접근했지만, 점점 더 유연한 표현을 쓰게 되면서 제 말투에도 변화가 생겼습니다. 동료들과의 점심시간은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곳에서는 좀 더 편한 말투로 이야기할 수 있었고, 팀 분위기를 이해하게 되면서 공식적인 언어와 비공식 언어의 경계를 체감했습니다. 특히 “~해도 될까요?”, “시간 괜찮으세요?” 같은 표현은 자주 반복되며 입에 붙기 시작했고, 결국 업무 중 실수를 줄이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의도 전달’이었습니다. 완벽한 문장보다, 내가 지금 무엇을 요청하고 있는지, 어떤 감정을 표현하는지를 정확히 전달하는 것이 신뢰를 쌓는 데 핵심이었습니다. 동료들과의 한국어 대화는 ‘사회 속 언어’를 배우는 과정이었고, 그것은 시험 점수로는 절대 알 수 없는 배움이었습니다.
4. 관계 속 한국어의 의미
친구, 연인, 동료—각기 다른 관계 속에서 저는 한국어를 다시 배웠습니다. 문법이나 어휘가 아닌, 사람과의 관계에서 언어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경험했죠. 이 경험들은 한국어를 단순히 ‘외국어’가 아닌 ‘나의 언어’로 만들어주는 소중한 계기였습니다. 지금 당신도 누군가와 한국어로 말하고 있다면, 이미 언어를 넘어 관계를 만들어가고 있는 중입니다. 한국어는 책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당신과 누군가 사이에 존재하는 ‘말’입니다.